김영옥 소장은 디자이너, 건축가이다. 제품, 인테리어, 환경 디자인과 건축 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복합문화 공간 튜브(Tube)로 주목을 받은 이래 10년 넘게 장식적 과장이나 재료의 화려함과는 다른 사람과 공간의 관계를 탐색하면서 음영이 풍부한 은유의 세계를 만들어 왔다. 최근 그가 디자인에 참여한 역삼동 호텔이 최근 오픈했다. 288개의 객실, 지상 22층, 지하 7층 규모의 신축호텔로 그는 전체 공간 디자인은 물론 파사드, 조경, 가구, 조명 디렉팅도 맡았다. 설계 기간만 2년 반. 이번 호텔 프로젝트에서도 내밀한 은유와 연상이 현실적 공간과 만나는 특별한 공간을 디자인했다. 긴 여정을 끝냈지만, 그 과정을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그를 그래도 생각이나 들어보자고 강남 끝자락에 있는 자곡동 사무실로 찾아갔다. (사진: 김욱)
1. 책상 곳곳에 스케치한 도면과 종이가 널려 있습니다.
: 네. 제가 좀 그런 편입니다. 종이와 도면들이 가득하죠. 버리지 않고 모았다면 아마 엄청남 분량일 겁니다. 저는 대화하는데 서툰 편이고, 강하게 주장하거나 설득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편이다보니, 스케치를 여러 부조리한 요구와 이해관계에 유연하게 반응하면서도 중요한 어떤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나에 대한 질문이고, 그에 대한 풀이이기도 하고요.
2. 이렇게 쌓여 있는 스케치 작업을 보니 무의식적 감성을 중시할 것 같습니다.
: 공간을 느끼는 감각은 ‘사람과’ 비슷합니다. 바로 설명이 되면 매력이 없지요. 그래서 전 ‘분위기’라는 말로 제 디자인을 정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용도, 클라이언트, 장소 등 항상 관계에서 새로움을 찾고, 그 중 감성적인 면을 저는 저만의 ‘장치’를 통해 완성합니다. 저는 돌이나 나무 어떤 재료에도 천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오브제를 주로 쓰는 편도 아닙니다.
3. 분위기라는 표현은 다른 지면에서 언급한 모호함이나 우연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연상’을 통해 작업을 한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 그것은 공간의 공백이 만드는 특별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공백은 사람과 공간이 소통하면서 새로움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며, 우연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그래서 어떤 공간이 조금의 차이로 조절될 수록, 조심스러운 태도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좋은 공간은 모순을 품고 있고 모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는 동시에 깊이를 더해줍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산만하게 떠도는 기억들, 뭉쳐 있어 전달되기 않는 떠도는 것들, 소통되지 않는 연상들, 학습이 아니라 저절로 익혀진 것들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매번 작업을 할 때마다 저만의 연상이나 은유를 갖고자 합니다.
<역삼동 호텔 642 프로젝트> 위로부터 1층 블랑 포리스트(Blanc Forest), 2층 딜라이트 가든(Delight garden)과 기둥 사이로 보이는 1층 라이브러리 전경
4. 여기 역삼동 호텔의 설계 도면에는 비즈니스호텔로 적혀있네요. 그런데 실제 완성된 공간의 분위기는 오히려 부티크 호텔의 느낌입니다.
: 처음에는 클라이언트가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설득한 거죠. 호텔은 리빙 룸, 다이닝 룸, 베드 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매일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비일상적인, 딴 세상에 존재하는 집으로 생각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객실은 작지만 최대한 효율적이게 구성하고, 공용 공간은 비일상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그것이 다른 호텔과의 차이를 만드는 겁니다. 이것이 컨셉이라면, 컨셉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저를 위한 이미지도 있었습니다. 1층 로비는 르네 마그리트의 블랑 포리스트(Blanc Forest)에서 영감을 얻어 반쯤은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담고, 2층은 서향 빛이 많이 들어 밝고 자연적인 딜라이트 가든(Delight Garden)으로 만들었습니다. 지하 공간은 뮤트 코트(Mute Court), 객실은 린넨 파자마(Linen Pajama) 등 디자인 단서를 위한 연상적 키워드를 만든거죠. 진행 과정에 선택하고 조절하는 시간이 많은데, 이런 이미지가 기준이 되고 의지가 됩니다.
5. 비교적 긴 시간을 추여한 이번 프로젝트로 인해 호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겠습니다.
: 보통 인테리어 설계는 한달에서 두 달, 길어도 일 년 정도입니다. 생각하는 시간도 만드는 시간이 짧습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는 건축 기본설계가 끝나면서 시작됐습니다. 아마 특급 호텔 규모를 국내 디자이너가 내부 공간은 물론 파사드, 조경, 가구, 조명 디렉팅 등 전체 공간을 설계한 보기드문 사례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호텔은 매우 상업적인 공간입니다. 디자이너가 호텔 운영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도가 있어야 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지요. 그래도 그 과정을 통해 호텔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문화복합시설 <Tube> 1층 전경, 1999
6. 인테리어 디자인이 접근하기 쉬운 감성을 노린다는 비평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정체성이 느껴지는 디자이너가 많지 않다고 봅니다.
: 예술가와 건축가는 자기의 언어가 분명하다고 생각들 합니다. 디자이너도 마찬가집니다. 좋은 디자이너는 자기의 언어가 있습니다. 장소는 물론 용도 규모 요구에 따라 반응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디자이너가 단순히 재료와 컬러를 고민하는 정도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나라 디자이너와 외국의 몇몇 유명 디자이너와 비교하며 정체성 문제를 거론한다면 좀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필립 스탁이나 론 아라드는 자기 가구, 조명, 카펫이 있습니다. 다른 식의 변화가 있어도 자기 것이 있어서 일관성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기업과 연계 되서 제품화되어야 하는데, 산업이 따라와 주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디자이너는 좀 더 유연하게 여러 감성들 사이에서 그것을 어떻게, 어떤 의도로 조직할건 지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체성으로 귀결될 겁니다.
7. 새롭게 만들건, 기존의 것들을 조합하건 간에 자기 언어를 지속적으로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로 들립니다.
: 이전엔 제가 항상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승곡선 있잖아요. 좌에서 우로 올라가는. 그런데 최근의 생각은 나는 선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좌표에 존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중심이 있고, 주변에 떠다니는 점들이 있어서 그것에 반응하는 거지요.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그것에 반응하고,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고… 특정한 자연의 소재를 쓴다거나, 동일한 오브제를 반복적으로 쓰는 것하고는 다른 이야깁니다. 즉 제 안에 있는 그 무엇과 프로젝트거나 사람들과 관계에서 매번 새롭지만 나다운 것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석촌호수 프로젝트> 가운데 ‘다이닝 바 호수’의 외부와 내부 전경, 2010
8. 전시에 종종 참여하고 계십니다. <디자이너 초이스> <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7가지 것들> <디자이너 스케치전> 등등.
: 반응의 시간차가 짧은 것이 매력적이고, 그때그때 반응해서 보여주는 작업 방식을 즐깁니다. 마치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 서울리빙페어의 데이드림하우스(Day Dream House) 작업에서도 제 기억을 바탕한 개인적인 느낌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며, 램프를 따라 들어가는 집을 만들었는데, 평소 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순수하게 집이란 무엇인지 고민했지요. 차기율 선생과 ‘허약한 경계’란 작업을 할 때도 그 분의 작업에 직관적이고 실험적으로 반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차기율 선생과 저하고 즉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간에는 허약한 경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됐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직관적으로 끄집어 낸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종종 디자인 프로젝트보다 기억이 남기도 합니다.
9. 지난 20년 넘게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와 상업 공간을 디자인했습니다. <플러스>에서 10년을 보내고, 다시 10년 넘게 <로담A.I>에서 대표 디자이너로 보내고 있습니다.
: 많은 종류의 공간을 작업해 왔습니다. 문화, 상업, 주거, 오피스, 전시, 환경 디자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또 다른 10년을 시작하면서는 좀 더 고유의 분위기를 가진 새로운 시기를 갖고자 합니다. 공간을 대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만드는 사람과의 관계 맺기라는 생각이 점점 듭니다. 즉 개인적인 것일 수록 큰 힘이 느껴집니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큽니다. 그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분명 있었지만, 잊고 있거나 모르고 있던 것들을 다시 꺼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허약한 경계> 차기율 작가와 공동 작업. 이천문화회관, 2009
김영옥
디자이너, 건축가이다. 건축 인테리어 스튜디오 로담에이아이 대표이며,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이다. <Tube> <Pen> <Cherry Hotel> 등 상업공간과 <서원어린이집> <석촌호수 프로젝트> <잠실 환경 디자인> 등 주거와 공공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서울시 창작공간과 GS칼텍스 감성 디자인, 그리고 다양한 전시활동을 통해 예술과 디자인, 도시로 그 작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 3월에 2년 반이 넘게 진행한 역삼동 호텔을 완성했다. 서울 시립대에서 건축공학과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실내건축을 전공했다.
박성태
magazyn.co.kr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