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대 중반. 그는 홍콩 크리스티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주변의 사람과 사물들을 길게 늘이거나 줄여온 조형언어에 대해, 누군가는 왜곡이라 일컬었고.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느낀, 사회에 대한 막연한 긴장 때문은 아닐까요?”라고 읊조렸다. 한편, 종종 괴상함이 강요되는 현대미술이 때로는 납득이 잘 안 된다고 밝힌 그의 작업은, 일견 무심하고 일상적이다. 하지만 그런 편안한 정서 가운데 우뚝 선 그의 작품은 여전히 긴장 돼 있다. 마치 세상을 초연히 바라보지만 걱정하고.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는 어린아이처럼.
1. 최근 들어 작업실에 새 스태프도 충원하셨다고 하는데. 뭔가 변화가 생기는 겁니까?
: 저는 회사처럼 스태프가 있고 공장이 두 군데서 진행되고 있는데.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려다 보니. 꿈을 펼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해보고 싶은 것은 계속 떠오르는데. 지금까지는 너무 더디게 왔더라고요. 무슨 무술연마 하듯이. 예전에는 다른 사람이 흙 작업을 어느 정도 해놓고 작가가 마감을 본다거나 하는 것은 안 된다고 여겼거든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작업이라는 게 함께 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3년 전쯤에 이런 생각을 했으면 오히려 성급한 생각이었을 거예요. 기술이나 모든 면에서 어느 정도 전수되어 가고 있고요. 제작방법에도 여러 가지를 다 도입해 보려고요. 예전에도 3D스캐너로 스캔해서 RP로 출력해 본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작업을 하면서, 과연 이런 테크닉을 쓰는 게 옳은 것인지 고민을 했거든요.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냥 도구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2. 2008년 카이스 갤러리에 등장한 레옹 마틸다 이후 대중적인 영화장면을 소재로 삼는데 부담감은 없었나요?
: 영화라는 소재는 상업적인 냄새를 풍기기 쉬워서 사실 고민을 한참 했었어요. 하지만 꼭 해보고 싶고 그래서 꼭해야만 하는 작품들이 되었지요. 사실 영화작업은 실제로는 가장 상업적이지 못해요. 잘 팔리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분명하게 차이가 나거든요. 더군다나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을 것이다’라는 소재로부터의 편견은 더욱 저를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하기 쉽거든요.
사실 영화작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는 않았어요. 그냥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었고요. 다른 시간이나 공간 그리고 의복, 동물이 등장한다거나. (가령 튜니티의 말) 총이라든가 부츠, 꽃을 언제 만들어보겠어요? 고기를 만들기 위해 도살장도 몇 번 갔었어요. 뛰어다니는 사람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했는데. 여러 장면을 조합해가며 만들어낼 수 있더라고요. 영화를 하면서 고지식하게 만들던 기존의 패턴에서 벗어나게 됐어요. 융통성이 좀 생겼다고 할까요? 영화는 어떤 신(scene)을 만들더라도 나머지는 다 유추니까요. 심지어 어떤 장면도 풀 샷(전신이 모두 촬영된)인 경우는 거의 없어요. 기억의 장면과 실제 영화의 장면은 많이 다르더군요. 어디가 가려져 있거나. 그냥 부분이죠.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단지 착각이었던 것이죠. 
Trinity 233×240×80cm Plastic, leather, steel
3. 덕수궁 돌담길에 놓인 ‘장독대’는 늘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길을 받더군요. 혹자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 ‘아이디어’가 판치는 현대미술에서 ‘마음’이 느껴지는 작업이라고 하던데.
: 예전 미켈란젤로 같은 것은 보면 알겠는데. Frank Stella의 고철(Amabel) 같은 건 도통 못 알아먹게 생겼잖아요. 그냥 이게 뭐야? 모르겠으니까 불쾌해지는 거죠. 솔직히 보통 사람들은 “난 잘 몰라”하고 부끄러운 듯이 말하지만. 아마 속으로 “내가해도 저것보다 잘 하겠다”“돈이 아깝다”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일반적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좀 더 보편적인 시각 언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굳이 설명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좋아야 하는 거죠. ‘와! 저게 저곳에 있으니까 좋다.’ ‘혹은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하고 궁금해지는 작업이라든가. 저는 공부가 없더라도 알 수 있는 그런 걸 할 수 있었으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난해한 쪽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 같고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해서 무조건 작품으로 만드는 건 아니에요. 그 아이디어가 제 맘에 거부감 없이 들어올 수 있어야 작품으로 제작이 들어가거든요.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이성과 감성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바라보는 작품은 아주 약간 더 감성 쪽에 점수를 주고 있어요. 그게 바로 마음이 느껴진다고 하시는 이유가 아닐까 해요.
4. 2000년대 중반 홍콩 크리스티에서 고가로 작품이 낙찰되면서. 소위 아트스타가 되셨죠.
: 2006년부터 먼저 KIAF에 나가게 돼서 반응이 좋았어요. 사실 전부터 저는 팔리지도 않던 제 작품들을 당시로서는 비싸게 가격매기고 있었어요. 왜냐면 좀 힘들게 만들었거든요.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돼.’ 생각했고요. 굳이 육체와 정신적인 산물을 쉽게 팔 필요가 없다고도 여겼고요. 옥션은 그야말로 가격을 가지고 경쟁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기록적인 가격을 만들어내기 쉬워요. 그에 따라 스타도 만들어지기도 하구요. 하지만 좋은 작품과 높은 가격은 정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옥션의 위험성은 작가가 자기평가를 가격의 척도로 계산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예요. 그리고 그 이익의 대가가 작가에게 모두 간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점도 그렇고요. 한편 옥션의 장점은 저 같은 사람들에게 좋다는 거죠. 교육수준이나 출신 등의 배경이 영향력을 잃고. 보이는 그대로의 시각적인 언어로 평가받는 것이죠. 젊은 작가들이나 무명의 작가들에게 출세 길이 돼줄 수도 있겠죠.

Jangdockdae(gray) FRP
5. 그간 접하신 외국인 컬렉터들을 통해, 내국인과 미술을 대하는 태도에서 어떤 차이를 느끼셨나요.
: 제가 체감하는 바로는 아직까지 한국에는 그저 작품이 좋아서 작품을 모으시는 컬렉터 분들이 소수이신 것 같아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서 구매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역사적으로 볼 때도 아직 미술이 우리사회에 발붙일 시간적여유도 부족했다고 생각되고요. 아직은 미술품을 주식이나 물질적 교환수단으로 여기는 결과도 그런 결과가 아닐까? 해요. 물질적 교환수단으로서의 미술품은 한편 미술계의 힘이 되기도 하지만요.
6. 2006년이 시장을 통해 작가를 알린 계기였다면, 작업적으로 중요한 시기는 언제였나요?
: 왜곡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은. 대학1학년 겨울이었어요. 하지만 첫 작품은 복학해서 만들고 다음해 출품했죠. 또 제 성격상 한번만 해보면 돼. 일생에 꼭 해보고 싶고. 의미 있겠다 싶었고. 그래서 그 다음 생각은 없었죠. 하지만 4학년 쯤 됐을 때. 이제 뭐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던 중 학교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제가 무었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되었어요. 그 후로 굉장히 힘이 생겼어요. 아주 자신 있게 뭔가를 만들게 됐고. 그러다보니까 버스정류장에 그냥 버스(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풍경을 연상하게 됐고 그게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목적이 강하거나 뚜렷한 미술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또 너무 직접적이거나 시사적인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고요. 설명적이고 싶지도 않고요. 그래서 저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이거야.” 라기 보다. “나는 그렇지 않은걸 보고 싶어요.”라는 태도에 가까운 작업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bus stop
7.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문화 예술과 관련된 일은 박봉이고. 또 밥 대신 꿈을 먹으라는 호통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데요.
: 잘 모르겠어요. 잘하는 건지. 하지만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줘야한다고 생각해요. 적절하다는 말이 아주 주관적이긴 하지만…. 대가를 주지 못하는 게 보편적이라고 해서 그게 맞는다고 볼 수 없겠지요. 대가에 대한 부담 대신에 저는 다른 것을 얻었어요. 제가 보통 사장역할을 잘해내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하지만 능동적 이라는 것.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거든요. 제 직원들은 저보다도 더 깐깐해요. 그 결과 매작품마다 질적인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졌죠.
8. 작가로서 근 10년이 되어 가시는데 그간 입장의 변화가 있으신지.
: 지금에 와서는 작가라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해봐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남아야지 위대해 보일까봐. 비평가들로부터의 혹평을 피해 가는 것 보다는. 꼭 하고 싶은 것을 해간다는 것. 진실성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작가로 평가되는 것도 결국 진정성이라고 봐요. 그래서 그것에 따라 그 작품은 고조되기도 하고 별게 아닌 게 되기도 하죠. 내가 진정성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보고. 설령 그게 오해를 살지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Rocky 201x23x40cm, meat 344x46x15, installation 447.5x100x90cm, F.R.P
9. 얼마 전 광화문에 있는 ‘헤머링 맨’이 서울시민이 가장 좋아하는 조각품으로 꼽힌 조사가 있었는데. 퍼블릭 아트에 대한 관심은 없으신가요?
: 앞으로 공공미술에 관심을 갖으려고 해요. 예전부터 환경조각을 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대학초년 때 왠지 대가라고 하는 작가들은 크게 만든다거나 대량생산의 수법을 많이 사용 하는 것 같았어요. 똑같은 것을 많이 뽑아서 잔뜩 쌓아 논다거나. 아니면 어마어마하게 크게 혹은 많이 하려는 모습에서. 중압감, 권위감을 느꼈어요. 제 딴에는 그런 걸 대륙적인 기질? 따위로 생각해왔는데 적절한지 는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걸 싫어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편견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건물에 환경에 녹아들 수 있는. “그곳에 있어서 좋다”는 말들을 수 있는, 환경조각물을 만들고 싶어요. 분명 모두 좋아하지는 않겠지만요.
이환권
경원대학교 미술대학 환경조각과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으로 2011년 ‘이환권 개인전’ 애드윈갤러리&자카르타미술관. 2010년 ‘이환권 개인전’ 가나뉴욕. 2009년 ‘Scans of memory’ 홍콩아트센터. 2009년 ‘Shared Illusion’ 카이스갤러리. 2007년 ‘이환권 개인전’ 안더스갤러리, 뒤셀도르프. 2007년 ‘바람부는날’ 포스코미술관. 2005년 ‘버스 정류장’ 세종문화회관이 있으며. 단체전으로 2010년 ‘이환권,지용호 2인전’ 홍콩타임스퀘어. 2009년 ‘Moon Generation’ contemporary art from seoul, Phillips London de Pury. 2008년 ‘뉴욕 가나 개관전’ 가나뉴욕. 2008년 ‘미술의 표정’ 예술의전당. 2007 ‘Have You Eaten Yet?’, Asian Art Biennale, 대만 국립미술관 등이 있다.
차평철
magazyn.co.kr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