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닥, 일명 팝핑캔디. 입안에 넣기까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느낌의 ‘입안 폭죽 사탕’. “영화 ‘두개의 문’은 마치 팝핑캔디처럼 용산참사에 대한 다양한 감정들이 앙금처럼 남아있는 이 시점에서 그 감정들을 막 흔들어 놓은 것 같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 ‘두개의 문’은 2009년 용산참사 현장을 그대로 재현, 가히 2012년 사람들의 마음, 그리고 대한민국 영화계를 흔들어놓을 대작이 될 전망이다. 섬세하지만 과감한 영화, 폭발적이지만 차분한 영화 ‘두개의 문’의 두 명의 감독, 김일란 ‧ 홍지유 감독을 만났다. (사진: 시사인 제공)
1. 김일란 감독님은 기지촌 여성의 삶을 다룬 ‘마마상(2005년)’, 성소수자 이야기를 다룬 ‘3XFTM(2009년)’으로, 홍지유 감독님은 ‘레즈비언 정치도전기(2009년)’로 두 분 모두 영화제 수상도 하셨는데요, 세 영화 사이에 공통점이 제작사 ‘연분홍치마’더라구요. ‘연분홍 치마’, 어떤 제작사인가요?
: 제작사라기보다는 ‘여성주의 문화운동 그룹’이에요. 저희가 처음 만나게 된 건 2002년에 여성주의 세미나 그룹에서 지금의 4명 멤버가 포함된 팀으로 만났고 그 중에 활동가 운동그룹으로 문화운동을 펼치는 단체를 만들고 싶다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했어요. 이후에 한 명이 더 결합해서 5명이 9년째 활동하고 있어요.
‘두 개의 문’은 다섯 번째 작품인데,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든 건 아니었고 여성운동, 성소수자 인권운동 등 다양한 인권운동과 연대하고 그것을 문화적으로 어떻게 소통 가능하게 할까 생각하다 만난 것이 다큐멘터리였죠. 제작은 그때그때 시대읽기, 저희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때 시작하는데 사안에 대해 가장 관심 있는 사람이 감독이 되는 편이고, 그 외 4명이 촬영, 편집, 현장 활동가 등을 번갈아가면서 맡아요. 서로 로테이션하면서 역할을 바꾸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연분홍치마의 작품은 모두 공동작업이에요. 그래서 감독상이나 다큐멘터리상 등도 누구 한 사람이 아닌 연분홍치마의 결과물인 거죠.
밖에서 보면 저희가 처음부터 갖추고 시작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서로 조금씩 기술을 익히고 갈고 닦으면서 진행해 왔어요. 영화를 좋아해 대학 때 영화 만들고 다른 대학 영화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곤 했지만 전공은 아니었구요. 영화이론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처음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이론과 제작은 완전 다른 거여서 좌충우돌하면서 작품을 시작했고, 구성원들이 하나하나 고민하고 각자의 경험들이 그것들을 증폭시켜나갔어요.
2.‘연분홍 치마’란 이름이 참 예쁜데요
: 저희 단체의 정식 이름은 ‘성적소수환경을 위한 연분홍치마’에요. 스스로 어떤 단체인지 설명해야 하니까 그렇게 긴 이름을 붙인 건데 거기에 모든 지향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소수자로 할지 소수로 할지에 대해서 꽤 길게 논쟁했구요. 성 정체성을 잘 표현해내는 이름을 지었으면 좋겠다 해서 나온 게 연분홍이란 색이었고, 문화적 감수성이 풍부한 다른 이름이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과 여성주의를 상징하는 게 색깔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치마를 붙일까말까 꽤 고민했어요. 치마라는 게 여성을 상징하는 고전적인 단어라서요.
그래서 아는 선생님을 찾아가서 의논드렸더니, ‘너희가 세상에서 뚝 떨어졌니? 너희가 운동하려는 여성운동의 기반이 있고, 그 치마로 표현되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면 그걸 안고 가야 하지 않겠냐. 젠더 이분법이 그렇게 된다면 그 속에서 너희가 위치 짓고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여성운동이 새로운 운동을 지향하는 것이긴 하지만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하니까 우리가 여성주의자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점에서는 치마가 필요하겠다 했죠.
3. ‘두 개의 문’과 여성주의는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요?
: 어떤 현장에 가든 현장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현장에 개입하는 태도, 자세도 중요할 텐데 저희는 여성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현장에 들어갔어요. 어떤 분들은 용산참사에 대한 다큐가 이미 9편이나 나온 후 개봉하니까 의도적으로 차별적인 경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냐고 하셨는데 ‘두개의 문’은 그 작품들이 나오기 전부터 준비했고 경찰 시각으로 보게 된 것도 여성주의자인 부분이 많이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여성주의는 여성의 삶에 대한 연대의식이기도 하고, 여성의 권력 없음에 대한 투쟁이란 면에서 권력관계에 대한 긴장을 일상적으로 갖고 저항하는 것이거든요. 저희는 그 태도를 갈고 닦는 것을 지향으로 두고 있구요. 그런 측면에서 여성자체가 아닌 삶을 바라보는 성찰에 있어 권력이라는 게 어떤 것이고 누가 권력을 갖고 움직이는지 그 가운에 배재되는 게 무엇인지, 어떤 맥락이 있는지를 설명하는 건 저희 몫이겠구요.
결국 여성주의는 정해진 주제 뿐 아니라 그런 생각,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거죠. 일부의 오해처럼 여성주의가 소위 말하는 여권운동은 아닌 거 같아요. 여권운동으로 일축하는 건, 마치 막시즘을 부자에 대한 혐오라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겠죠.
4. ‘두 개의 문’ 제작에 대한 생각은 언제 시작하셨고, 가장 어려웠던 일이라면?
: 재판이 시작될 때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방청하면서 마음의 준비도 하고 누군가에게 다큐를 제작할까 물어보는 과정도 겪다가 1심 판결 나면서 ‘억울하다’라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작품에 대한 평가를 떠나 2009년부터 매일 용산만 들여다보고 생각한 게 놀랍다하시는데 정말 매일 보진 않았겠죠. 하지만 자주 보고 생각하면서 감정을 누그러뜨릴 시간이 충분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용산참사에 대해 애써 누르고 잊었던 분들에게는 3년 6개월 만에 나타난 이 영화가 감정을 더 폭발시켜드린 게 아닐까 싶어요.
가장 어려운 건 ‘재정’이죠. 뾰족한 수입원이라고는 이제 막 100명 정도가 된 정기후원회의 회비 뿐이라 완전 실비만 들어갔죠. 현재는 5명의 활동가 중 두 명만 최소한의 생계지원금을 받고 있고, 사무실과 자기 집을 합친 한 분은 사무실 운영비를 연분홍치마가 부담하니까, 2,3명 정도에게 생계지원을 하고 있는 셈이죠. 배우 출연료는 당연히 줄 수 없고, 필름 값, 차비, 특공대 복장 대여비, 관광버스 대여비 뭐 이런 정도죠. 워낙 돈이 오가면서 작품을 한 게 아니고 가까운 사람을 지지하기 위해 함께 해주신 분들이 많으셨어요.
5. 독립 다큐의 경우 막상 영화가 만들어져도 개봉관에 걸린다는 게 어려운데요, ‘두개의 문’은 배급위원회를 구성해 메이저 개봉관에서도 상영되고 있어요.
: 처음엔 정말 막연했죠. 하지만 3년 6개월 동안 감정적으로 응어리진 사람이 너무 많고, 해결되는 건 없고, 법정의 문은 닫혀버렸고. 그 이후 용산이 강제진압의 잘못된 매뉴얼이 되어 줄줄이 쌍용에서 유성에서 이어지고 있는 국가 주도의 탄압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며 이에 관심 갖는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배급사 시네마 달, 제작사 연분홍치마, 그 외 배급을 고민하는 많은 분들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인권재단 사람, 문화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이 합류하면서 배급위원회 모집 이야기가 나왔죠. 그래서 3월 12일에 배급위원회 공개모집을 위한 시사회를 했고, 그 자리에 오신 배급위원회 분들이 후원 약속을 하시고 그분들이 칼럼, 기사, SNS 활동 등을 통해 모집한 결과 834명, 3천만 원 재정이 확보되었어요. 그리고 이전에 영화진흥위원회에 독립다큐 저예산 지원 펀드에 신청한 게 채택되어 3천만 원을 받았구요. 모두 6천만 원이 된 거죠.
배급위원 모집의 목적은 동참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간다는 거였는데 834명 숫자를 대면했을 때 정말 놀라웠어요. 3만 원의 약정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대대적인 광고를 하지도 않았구요. 지금도 후원계좌가 돌고 있는데, 사실 저희 말고도 투쟁현장에 대한 후원계좌가 정말 많잖아요. 저희는 그 계좌들 중 하나에만 참여하신다면 저희하고도 함께 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6. ‘두개의 문’을 통해 부각시키고 싶었던 점이라면?
: 법치가 상실되었다라는 프레임. 그래서 저항이라는 것들을 가두는 방식에 있어서 ‘법을 지켜라. 그리고 나서 저항하라’는 주장에 순응할 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언론에서는 참사의 원인을 철거민들의 불법 폭력시위 때문이라는 식으로 보도했고,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다행히도 이것을 저항의 의미로 만들어갔던 사람들은 철거민들의 행동에 대한 옹호를 떠나 법치라는 것의 허상을 깨부수지 않는 한 저항은 그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왔죠. 그래서 우리를 세뇌시키고 있는 법치라는 프레임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법치라는 것이 유일한 명분이 됐던 사람들이 바로 경찰 특공대였는데, 지위라인들의 이해관계와 달리 직업이었고 말단이었던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 건 ‘명분’이었다는 거죠. ‘불법을 행사하는 사람들, 선량하지 못한 시민이 선량한 시민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화염병을 들었다’라는 것에 다른 프레임을 제공하려면 일단 법치라는 틀을 깨고, 경찰 특공대원들을 개개인의 시민으로 불러내야겠다는 거죠.
그랬을 때 그들이 말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고 내부적으로는 어떤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을 가해 집단으로 매도하는 건, 해결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 측면들이고, 그들 역시 자신이 설명해 낼 수 없는 어떤 피해,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피해를 입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7. 김일란 감독님은 이번 영화에 대한 한 인터뷰에서 ‘두개의 문’이 ‘야구의 적시타’ 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 흐름을 확 잡아주는 거죠. 경기가 거의 끝나가는 9회말 2아웃에서 7:4 정도로 지고 있을 때 만루에 안타가 나와 역전하는 상황이랄까요. 야구는 이기고 있어도 지고 있는 느낌이 들 수 있고, 속도가 붙으면 변수가 막 생기잖아요. 그런 거, 뭔가 터져주는 그래서 1루에 어떻게든 나가기 위해서는 데드볼이라도 좋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절망스런 분위기에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 수 있는 희망의 촉매제가 되면 좋겠다 싶어요.
아까 배급위원회 말씀을 드렸는데, 사실 ‘두 개의 문’을 ‘배급 투쟁’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웃었는데 갈수록 입에 착 붙는 거예요. 배급 구조를 바꾸어 내고 싶은 욕망도 막 생기고요. 그리고 배급을 시작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부터 예상치 못했던 이들의 지원이 계속 되고 있고요. 변수처럼 계속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이런 반응이 나오지? 하는 건데 예를 들면, 어떤 분이 상금을 받았는데 그 상금을 단체 관람하는데 쓰고 싶다라든가, 인터뷰도 그래요. 해달라고 졸라야 되는데 인터뷰를 하겠다고 연락이 오고 그런 부분들이 도와주시는 거잖아요. 인터뷰를 하더라도 몇 주에 걸쳐서 내보내 주시는 곳도 있고, 그런 부분들이 이미 우리가 뭔가 흐름을 타기 시작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들게 해요.
8. 대단한 바람이죠. 그동안 용산 참사에 대해 나온 영화도 많이 있었지만 어떤 영화도 이렇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거든요. 그동안 사람들은 여전히 마음이 아프고 정리가 안 되어서 보는 것조차 괴롭다 힘들다 했던 게 아닌가 싶은데 지금은 정치상황과도 오묘하게 타이밍이 맞아가고요. 그래서 적시타라고 하셨나 했어요. 이후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기대나 상상이 있으시겠죠?
: 정말 야구 같은 경우에 운이기도 하고 그 이상한 변수들에서 흐름이 확 바뀔 때의 쾌감은 상당하잖아요. 플라잉 볼일 때 탁 놓쳐주는 그 순간이 쌓여서. 그런 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가깝게는 9월 국정조사에 김석기와 조현오를 출두시키는 것이죠. 출두하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해 제대로 계속 항의하고 출두할 때까지 뭔가 밀고 나갈 힘을 모으고요. 또, 국민 참여 재판에 대한 여론이 일어날 수도 있고, 2009년에 국민 참여 재판을 신청했지만 기각 당했거든요. 법정이 아니라면 이번이 절호의 기회인 거죠. 김석기, 조현오를 불러내고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가는 거죠. 잊었다고 생각한 그들에게 잊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또 저는 요즘 들어서 이걸 만든 연출의 입장이 아니라 100% 관객의 입장이 되고 싶다란 생각을 하는데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이 어떤 상황에 직면하는지 이게 상상이 잘 안돼요. 관객 분들이 ‘피가 빨리는 것 같았다, 숨 막힐 거 같았다. 토할 거 같았다’고 하시는데 그 느낌을 도대체 모르겠어요.
그래서 트위터에 그게 도대체 무슨 느낌인가요? 하고 썼더니 어떤 분이 비유하시기를 ‘집에서 불이 나고 있는데 동동거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느낌. 우리 집에서 불난 건 아니지만 그걸 다 보고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없는 무기력감을 넘는 그 어떤 압박’ 그 압박이 뭔지 모르겠는데 그것이 결코 절망의 메시지는 아닐 거라는 거죠. 어쩌면 이 절망 자체가 희망으로 전환만 하면 충분히 희망의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그런 이후를 기약하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두 개의 문’을 본 후 술집으로 간다고들 하는데 술집도 좋고 뭔가 이후를 기약하는, 그게 국정감사도 좋고 대선도 좋고 어쨌든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서 그 이후를 기약하는 영화가 되었음 좋겠다 싶어요.
9. ‘두 개의 문’의 뜻이 ‘삶의 문’과 ‘죽음의 문’이라고 들었는데요, 영화 제목은 어떻게 정하신 건가요?
: 안전 진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었던 증언 때문이었는데요. 경찰 특공대가 컨테이너에 내려서 진입할 때 망루로 향하는 문 두 개가 있었는데 한 쪽은 망루로, 한 쪽은 창고로 가는 문이었어요. 그 앞에서 사소한 것 같지만, 어느 문으로 가야 되는지 몰라 문을 두 개 다 뜯거든요. 그러면서 지체하게 되는데 그 사소한 것조차 정보가 없어서 우왕좌왕했던 것이 그날의 진압이 얼마나 무모했고, 성급했고, 말도 안 되는 진압이었는지 잘 보여주는 예인 거 같고 그것 자체가 용산 참사의 한 단면인 것 같아서 이 제목으로 이야기를 풀어야겠다 싶었어요.
‘연분홍 치마’ 후원 문의 : 02-337-6541/ twitter@ypinks
김일란 ․ 홍지유
두 감독은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 활동가로, 김일란은 다큐멘터리 ‘마마상(Remember Me This Way, 2005)’, ‘종로의 기적(2010)’, ’3xFTM (2008)’ 을, 홍지유는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를 연출했다.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는 성적으로 위계화된 사회의 권력구조로부터 배제되어 다층적으로 억압받고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문화운동 단체로서, 여성주의적 삶을 지향하며 일상의 경험과 성적 감수성을 바꾸어 나가는 감수성의 정치를 실천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두 개의 문>은 두 사람의 공동작품이지만, 좀더 정확히는 ‘연분홍 치마’ 공동 작업의 결과물이다.
김옥자
‘스폰지’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고 흡수하지만 맘에 내키지 않으면 다시 스폰지처럼 꽉 짜내어 비워버린다. 흥미도, 싫증도 잘 느낀다. 하지만 사람이든 일이든 물건이든 한번 ‘내거다’ 싶으면 기본이 5년, 10년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연애’라고 믿는 오래된 잡지 편집자.




